19세기 중엽 조선은 안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한 근대적인 요소를 충분히 발전시키기 못한 채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직면했다. 1863년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사진] 이 집권하면서, 안으로는 성장하는 민중세력에 대하여 전제왕권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일본과 서구열강의 침략에 대항하여 쇄국정책[사진: 척화비] 을 고수하여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1866년 병인양요, 1871년의 신미양요, 1875년의 운요호 사건[사진] 등이 이어졌고, 마침내 1876년 강화도조약[사진] 이 체결되면서 나라의 문호는 개방되었다. 개항 이후, 조선을 둘러싸고 청국과 일본이 침략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보수적 유생청이 주도한 위정척사운동이 전개되었고, 1882년 구식 군인들을 중심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임오군란 이후, 보수와 개혁의 대립 속에서 개화당은 1884년 갑신정변[사진] 을 일으켜 개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였으나, 청국의 무력간섭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고, 개화의 흐름이 한동안 단절되었다.

한편, 나라밖으로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1860),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간의 전쟁(1866), 일본의 메이지유신(1868), 독일의 통일(1871),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삼국동맹(1882), 청과 프랑스간의 전쟁(1884) 등으로 각국의 충돌은 계속되었다.